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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섬진강 물길따라 50리, 화개장터 까지

(2010 남도여행 6)

앞서 언급했듯이 어제 늦은 오후, 버스편으로 하동에 도착하고 부터 다리의 근육통이 더욱 심해 걷기가 부자연스럽다. 휴대폰 충전이 필요해 편의점에 충전을 의뢰하며  배낭도 부탁했다. 배낭의 무게마저 벅차다. 그리고 자전거 점포를 찾았다. 도보여행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빌려 볼 요량 이었다.

읍내에서 두 군데 찾았으나 모두 대여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고 섬진강변 도로 폭이 좁아 위험하여 대여를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일단 병원부터 찾았으나 토요일 오후라 모두 문을 닫았다.

고민끝에 승용차 렌탈을 하려고 하동시내 렌트 회사에 문의하니 주말이라 모두 나갔다는 설명이다. 다시 구례쪽 렌트회사에 확인하니 그쪽 사정도 마찬가지 이다. 심지어 순천쪽도 마찬가지 이다. 승용차 렌트는 포기해야 했다.

일단 숙소를 정하고 쉬며 생각하기로 했다.

마침 숙소의 나이드신 아주머님께서 안티프라민 맛사지를 권유하신다. 약국에서 구입하여 바로 맛사지를 하고 PC방을 찾아 공사모 카페등을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7시,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그때까지 결심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도보냐, 거점별 버스 이동이냐......


김밥나라 식당은 먼저 소개하고 가야겠다.
이때까지 망설이던 나에게 결심을 하게 하였고 매우 친절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아침으로 우동과 김밥 한 줄을 주문하고 홀로 일하는 중년 아주머님께 나의 여행 계획을 대략 말씀드리니 하동에서 화개장터 가는 길목에 특별히 볼만한 곳은 없으나 "하동 송림"은 꼭 들른 후 버스편으로 화개장터로 갈 것을 권유하신다. 송림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니 자신의 승용차로 대려다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때까지 나 혼자 식사중 이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칠무렵 여러분의 손님과 김밥 주문이 들어오니 홀로 일하는 식당에서 잠시도 시간을 비울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나 오히려 미안해 하시며 길안내를 자세히 일러주신다.  (이 식당은 하동터미널에서 하동농협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철길 건널목

섬진철교 방향이다.

오랜만에 보는 시골 철길주변이라 사진에 담았다.


하동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광장

2007년에 개교 100주년이 된 유서깊은 초등학교이다.

학교는 담장이 없으며, 시민공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운동장에서 아침운동 하는 분 들을 볼 수 있다.

다시 "하동송림"으로 가는 길

운동복 차림의 노신사가 아침인사를 건낸다.
어디서 온 여행객이냐, 행선지가 어디냐  물으시며
사진작가협회 하동지부 부회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후
"하동송림"과 간단한 하동소개를 말씀해 주셨다.

따뜻함에 감사드린다.



섬진강 하구 "하동송림" 앞 백사장에서 바라 본 섬진강 철교



섬진강 하구 "하동송림" 앞 백사장에서 바라 본 "섬진대교"

좌측이 전남 광양, 백사장 쪽이 경남 하동이다.


하동송림

조선 영조 21년(1745) 하동도호부사 전천상이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아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 광평리 일원에 심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1935년 섬진교를 준공하고 홍수방지를 위한 제방공사를 하면서 송림의 일부가 훼손되어 지금은 7,881평에 620여주의 노송과 300여주의 작은 소나무가 전국 제1의 인공 숲을 이루고 있다. 맑고 푸른 섬진강이 감돌아 흐르고 백사장과 어울려 빼어난 풍광은 가히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할 만하다.


전체 송림을 1/2로 나누어 3년 단위의 안식년을 취해 노송을 보호하고 있다.

송림 속에 자리잡은 하상정(河上亭)은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준다.
시인이라면 절로 시상이 떠오를 것만 같은 빼어난 송림이다.


하상정(河上亭)과 송림


송림에서 하늘을 우러러...



"섬진대교"에서 내려 본 섬진강

강 중앙에서는 어부가 그물을 드리운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의 고요함이 흐른다.


"섬진대교"에서 바라 본 상류 방향

우측 벚꽃길이 화개장터 올라가는 19번 국도

오늘은 어제보다 다리가 다소 풀려 "하동송림"과 "섬진대교" 주변을 둘러 본 후 도보를 택했다.
그러나 대교옆 높지않은 공원에는 오르지 않기로 했다.
올라가 내려보면 시야가 트여 멀리 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가급적 조심하기로 했다.


19번 국도의 시작점

어제와 달리 오늘 벚꽃이 많이 피었다.

어제 버스편으로 섬진강길 따라 하동에 오면서 본 벚꽃과 다르게 많이 피었다.
하루밤새 변화다.


섬진강변 옛길
악양면 들어가는 삼거리 강변이다.


강변으로 내려와 본 하류방향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노자도덕경에서 물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다.

제8장에서 최고의 선은 물이라 했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는 법이 없다고 했다.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높은 곳을 지향하며 모든 악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강변의 갈대밭

곳곳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곁에는 갈대밭을 이루고 있다.
또다른 생명체의 보금자리 이다.


물가에 가까이 다가서 나의 방문을 기념하며 발자욱을 남겼다.


이곳은 "평사리 공원" 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평사리에 인접한 강가에 조성된 공원이다.
억양면 평사리로 들어서면 TV드라먀 "토지"의 촬영장과 "최참판 댁"이 보존되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은 "섬진강 물길 따라 50리, 화개장터 까지"에 이어 "섬진강 물길 따라 50리, 토지의 고향 평사리"라는 제목으로 이어서 포스팅 하여야겠다.



평사리를 돌아 나와 다시 화개장터 방향 도로변 벚꽃길을 걷는다.

강변에는 대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그 위로 벚꽂이 축복하고 있다.


강변에 드리워져 화사하게 핀 벚꽃



잠시 고개를 들어 벚꽃사이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 처럼 섬진강 따라 길을 걸으면서.....


다시 바라 본 상류 방향

스케치 하고 픈 그림이다.
강변을 걸으며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화개장터 가는 도로가 시간이 흐를수록 정체된다.


오후에 들어서 부터 화개장터 방향의 차량이 정체를 이룬다.

내가 걷는 속도보다 느리다.
차에서 내려와 걷는 사람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차에서 내려 운전을 교대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버스가 지나칠 때는 70%정도가 차량소리 보다 큰 울림이 들린다.

뽕짝이다. 이동식 디스코 텍 이다.
나는 강가쪽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화개장터에서 내려오는 차량을 마주보며 걷는다.
간혹 뒤에서 쿵쿵 울림이 들리면 그건 반드시 관광버스 이다.
엔진 소리는 그 이후에 들린다.

잠시 옛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인천에 약1년반 살던 때 이야기 이다.

그때가 88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이고
큰 아들이 연안초등학교 입학후 서울로 돌아 왔으니까...
정확히 88년도 이맘때 인것이 확실하다..

토요일 오후 인천을 출발, 무박2일 벚꽃축제를 다녀오는 관광버스에

가족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몸을 실었다.
관광회사에서 모집하여 가는 행사였다.

버스가 인천을 벗어나 수원에서 추가로 관광객을 태우고

안내양이 진해 벚꽃축제 여정을 안내방송 한 후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다.
승객들은 술잔이 오고 간다.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뽕짝이 시작되고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통로에서 흔들기 시작한다.
광란의 디스코......

안내양의 신호에 따라 신속한 행동으로 잠시 조용해지기도 한다.

매우 훈련이 잘된 민방위 훈련보다 낫다.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아이들은 굉음에 괴로워한다.

끌어않고 귀를 막아주며 주변을 살펴보니 일부 승객도 마찬가지 괴로운 표정이다.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이고 아이들은 버스에서 내리면 안되냐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만류하는 이 없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정무렵,

이제는 흔들만치 흔들었으니 그들도 한숨자고 내일 벚꽃구경 해야할 터이니
점잖게  부탁해 보았다.

이제 주무시고 내일을 맞이하자고...

안내양은 모른척하고....
어느 취한,  연세 지긋한 분이
내게 고함을 지른다.
버스에서 내리라고....

그리고 요란한 뽕짝에 더욱 흔들어 댄다.

아이들을 달래며 체념하고 만다.
      .
      .
      .
      .
새벽녘,
경남 창영 부곡온천에 버스가 도착될 때까지 계속된다.

아침식사와 온천욕을 할 시간이 주어졌다.

밤새 괴로운 시간을 보낸 우리가족은
식사후 주변을 돌아보며 심호흡 한다.
그리고 기분전환 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여 진해군항제 현장으로 다가간다.

해사 정문을 통과하며 우리는 벚꽃에 흠뻑취해 있을 때
광란의 밤을 보낸 그분들은 모두 주무시고 있다.

다시 버스가 진해시내를 벗어나...

어느 식당에 들어서며 안내양이 점심식사 안내방송을 하자
모두 눈을뜨고 일어나 점심식사를 한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광란은 다시 시작된다.
광란의 디스코 2부가 이어진다.
수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된다.

무박2일의 첫번째 진해벚꽃 축제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당시 포니2 중고차를 가지고 있었으나 장거리 짧은 일정이라

관광회사 모집에 참여했던 것인데...

그이후 우리가족은 관광회사 모집여행은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

벚꽃과 곁을 스치는 무수히 많은 관광버스(쿵쿵거리며)를 보니 문득 기억이 난다.
너무 생생하게 떠 오른다.

아름다운 추억?



섬진강변에도 작물재배가 가능한 땅은 이렇게 "녹차" 재배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왠만한 경사 일지라도 야산에 녹차밭이 있다.
도로변에 찻집이 많이 보인다.


만발한 벚꽃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다리의 근육통이 시작된다.

강변 소나무 밑에 쉴만한 곳이 있어 안티프라민 마사지를 한 후 드러누웠다.

하늘을 올려보며 소나무와 대화한다.

너는 어째서 소나무냐?
나는 누구인가?


도로에서 벗어나 뚝방길로 걸었다.

강 건너 산자락에 흰부분들은 매화밭이다.

섬진강 하류쪽으로는 매화공원도 조성되어 있으나 모두 돌아 볼 수 없어 이번 여정에서는 제외 하였다. 
산 아래 희미한 부분이 861번 지방도로 이다. 그쪽은 차량통행이 다소 한산하다.


화개장터 방향 차량행렬

개나리가 뚝으로 들어선 지친 나그네를 위하여 화사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화개장터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

뚝방끝을 지나 다시 도로에 접어들며 코너를 돌자 멀리 "남도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벚꽃 중앙으로 위치하여 찰칵!
다소 힘이 솟는다. 힘내자! 다왔다.


화개장터에서 내려오는 하이킹 행렬

버스기사 속좀 타겠다.

평소 같으면 중앙선 넘어 추월하면 되겠지만 오늘은 불가능하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자전거 일행이 진행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걸음을 멈추었다.


아침 출발할 때와 또 다른 것 같다.

아침나절 보다 벚꽃이 더욱 활짝 피었다. 시시각각 다른 것 같다.
오늘이 "화개장터  벚꽃축제"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남도대교"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

몸은 고달프지만 생기가 돌았다.
아름다움을 기록에 남겨두기 위하여 위치를 잡아 다시 찰칵!
이때 시간 오후 3시 8분,   하동 숙소출발 오전 7시....


"남도대교" 앞 삼거리

경찰, 모범택시 기사 모두 동원된듯 하다.

화개장터 밖 도로변까지 임시 장터가 차지했다.


"남도대교" 위에서

다리를 건너면 전남 구례이고 계곡 옆의 산 능선을 경계로 전남 광양이다.

남도대교를 중심으로 2개 도, 3개군의 경계지점이다.

다리를 건너자 그곳에도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미꾸라지 튀김 2마리 천원. 막걸리 한사발 천원.
시원한 막걸리 두 잔으로 목을 축이고 길가에 주저 앉아 땀을 훔쳤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때면 매우 쓰리다.



남도대교에서 바라 본 상류

유유히 흐른다.


우리들 어머님의 강한 생명력

벚꽃관광  일행 일텐데, 주차장옆에서도 봄나물 채취에 여념이 없다. 항상 가족의 먹거리를 위한 아름다운 모습니다.
이번 여행중 질퍽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어머님의 모습도 보았다.

잠시 "어머님"을 화두로 생각하다보니 도덕경중 生之畜之 외에 그 다음 문장 생각이 막힌다.

집에 돌아와 도덕경을 다시 펼쳤다.

도덕경에서 도道)는 만물의 "어머니"라 했다.

또, 낳고 키우되(生之畜之), 가지려 하지 않고(生而不有), 이루나 기대려 하지 않고(爲而不恃), 기르나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한다(長而不宰).  이를 이름하여 그윽한 (德)이라 했다.
"어머니"에 대해서 이 외에도 여러 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위 본문은 현대의 부모님들도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한 문장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위대한 지침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세대 어머님의 상을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자식을 식물인간으로 키우려 든다.

마네킹으로 키우려 든다.
앞서 "120% 마마보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제목으로 포스팅 한 바 있다.
그때도 무척 분개했을 때이다.

요즘 일반대학의 교수들에게 학점, 학사관리 까지 시비하는 부모님들이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질색한 바 있다.

심지어 사관학교 생도의 문제까지 사관학교 관계자에게 시비하는 부모도 있다고 들었다.
요즘 신세대 부모님들의 치맛바람이 대학캠퍼스 가지 파고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는 스스로 성장하는 기회를 줘라.

품에서 때어내라.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지켜보자.

사랑이란 위장으로

마네킹으로 만들지 마라.
식물인간으로 만들지 마라.
마마보이로 만들지 마라.

할 말이 많다.

이쯤 접어두고 아래 "학도의용군"을 생각하자.


학도의용군 충혼탑, 의용군 전적비 오르는 길

6.25전쟁 당시 10대의 나이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학도병 40여명중 26인의 영령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 참전한 학도병은 여수, 순천, 광양 지역에서 혈서를 쓰고 지원한 중학교 학생들로서 육군 5사단 15연대 1대대 (부대장 조남철 소령, 중대장 정태경 중위)에 배치되어 1950년 7월 25일 이곳 화개지역 방어전투에서 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흩어져 있던 시신 26위를 지역주민들이 수습하여 집단 매장한 장소이며 당시 생존자와 지역주민들이  매년 7월 25일 추모를 하고있다.


학도의용군 충혼탑
영령들께 묵념한다.


학도의용군 전적비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 두었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지킨 조국의 번영을 굽어 살필 수 있도록...
영령들께서 북적거리는 봄날의 화개장터를 내려보시며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자.

그분들의 숭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전적비에서 내려 본 "남도대교"


전적비에서 내려 본 섬진강 줄기

강 건너편은 전남 광양이다.


시골장터의 놀이패

지나가던 분들도 뛰어들어 함께 춤춘다.

각시의 입담이 구수하다. 
"분명, 아짐씬데 우째 남정네 거시기 보다 쎄다냐~~~" 
"내가 못해 보것네~~~~"
"신랑 잡아 먹것네~~~~"


빈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화개장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있구요
없을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광양에선 삐걱 삐걱 나룻배타고
산청에선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사투리 잡담......    

화개장터의 유래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있으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 내려와서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

이곳엔 5일장이 섰으며,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 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또한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충무, 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하여 미역, 청각, 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와 이 화개장터에서 팔았다.



"화개장터"의 여러 모습들....

이제 외국인도 장터에서 낯설지 않다.

엿장수도 옛모습이다.
화개장터가 "벚꽃축제"와 때를 같이하여 정말 "왁자지껄 장날"이다.


"남도대교 야경"

이제 해는 저물며 3일째 여정을 마무리 할 시간이 되었다.

무대를 대신하여 남도대교 조명이 흐르는 물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시선을 끈다.
2개 도와, 3개군에 걸쳐 화해의 상징처럼....

계속....(섬진강 물길따라 50리길, 토지의 고향 평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