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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옹기의 숨결따라, 외고산 옹기마을


5월초부터 언양에 머물며 영남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처음에는 주변을 살필틈 없어 밤낮, 주말없이 다녔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주변을 살피게 되었고  바쁘더라도 잠시 차를 멈추고 둘러보는 여유를 갖도록 노력했다.

 

그중의 하나가 "외고산 옹기마을" 이다.
언양에서 지방 산간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타며 온양을 거쳐 온산 석유화학공단으로 오가면서도 발견하지 못했으나, 지난 8월 11일 온산에서 온양으로 나오는 길목 신호대기중에 특이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차를 멈추고 둘러보기로 작정했다.


(신호대기중에 발견한 옹기마을 안내 조형물)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에 위치한 옹기마을은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며, 생활이 어려운 마을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부산에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옹기수요가 많이 필요했다.  마침 경상북도 영덕에서 옹기공장을 하고 있던 한국 칸가마(노부리가마)의 창시자이고,  옹기 장인인 허덕만 씨가 부산이 가까운 곳을 찾다가 이곳에 와서 땅을 얻어,  공장을 짓고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때가 1957년이다. 

 

(옹기마을의 옛모습)


보릿고개로 어려운 시기라 옹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과 각지의 도공들이 몰려와 급속도로 마을이 성장했다.


이때는 옹기를 남창 역을 통해 서울로 실어 올리기도 하고 미국 등 외국에도 수출했다.  마을이 점점 번창하자 1970년대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동(分洞), 주민의 세대수가 200여 세대가 넘었다.


그 후 산업화가 되면서 플라스틱 용기가 생기면서 옹기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창시자 허덕만 씨가 작고하고 그 제자들이 하나하나 공장을 일으켜 현재의 한국 최고의 옹기마을을 만들었다.


온양에서 언제부터 옹기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지금은 없지만 남창 태화동(현 남창고등학교 부근)에 1910년 이전까지 옹기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고산리의 옹기업은 1950년대 경북 영덕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덕만 씨가 한국전쟁을 피해 이곳에서 옹기를 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마을 주변 이모저모)


(옹기문화박물관 내, 외부 모습)


(옹기 아케데미 전경)


(2010 세계옹기문화엑스포 포스터)


 (옹기마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