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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해파랑길 14코스|구룡포의 오래된 시간에서 호미곶의 거센 바람까지

동해의 길은 늘 바다만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길은 파도보다 먼저 시간을 보여주고, 어떤 길은 풍경보다 먼저 사람의 기억을 건드린다.
이번에 걸은 해파랑길 14코스가 바로 그런 길이었다.
 
포항 구룡포 항구에서 호미곶 등대까지, 지정코스는 14km, 4시간 30분, 난이도는 쉬운 편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실제 기록은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길을 2일에 걸쳐 16.6km, 5시간 50분 동안 걸었다.
휴일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정이다.
 
주요 통과지점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입구 – 구룡포항 – 구룡포 주상절리 – 삼정항 – 석병리 동쪽 땅끝 – 다무포 고래마을 – 대보항 – 호미곶 등대로 이어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길 위에는, 바다의 풍경만이 아니라 구룡포의 역사와 전설, 어촌의 삶, 일제강점기의 흔적, 한국전쟁의 비극,
동쪽 땅끝의 상징성, 그리고 마침내 호미곶의 거센 바람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1일차 기록|2026년 3월 1일

12.9km, 4시간 20분
1일차는 이미 해파랑길 13코스를 완주한 뒤 곧바로 이어진 걸음이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입구에 있는 ‘짬홍본점’에서 홍게짬뽕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해파랑길 14코스를 시작했다.
다만 그날은 서울로 돌아갈 포항역 KTX 출발 시간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끝까지 한 번에 걷지 못하고 오후 5시 30분경 길을 멈추었다.
 
구룡포항구 주변은 한 번에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100여 년 세월이 남아 있는 항구의 풍경, 근대문화의 흔적, 볼거리와 먹거리가 함께 모여 있어 발걸음보다 눈길이 더 자주 멈춘다.
특히 해파랑길 13코스와 14코스가 만나는 도로변에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는데,
커다란 꽃게 장식이 달려 있어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트레킹 코스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한 도시의 생활감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구룡포라는 이름에 담긴 전설

구룡포를 걸으며 이곳의 이름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신라 진흥왕 때 장기 현령이 각 마을을 순시하다 지금의 구룡포 6리, 곧 용주리를 지날 무렵
갑자기 큰 폭풍우가 몰아쳤다고 한다.

그때 바다에서 거대한 용 열 마리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졌고, 붉게 물든 바다는 이내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 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용두산 아래 깊은 못, 곧 소(沼) 속에 아홉 마리 용이 살다가 동해로 승천하였기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바다와 용의 전설이 만나는 이 포구는, 이름부터 이미 평범한 항구가 아니었다.


과메기의 고장, 구룡포

구룡포는 무엇보다 과메기로 유명하다.
일본인 가옥거리 옆에는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이 자리하고 있어, 이 지역의 어업문화와 식문화를 함께 보여준다.
 
과메기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사람 사는 집은 보이지 않고 배는 고픈데 해변가 언덕 위 나무에 생선 눈이 꿰인 채 말라 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더니
너무나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 선비가 과거를 보고 돌아온 뒤 겨울마다 청어나 꽁치를 같은 방식으로 말려 먹었고, 그것이 과메기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사실인지 전설인지 따질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구룡포 사람들이 오랜 세월 겨울바다와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 낸 삶의 방식이
지금도 이곳의 문화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멈춘 공간, 일본인 가옥거리

포항 구룡포에는 100여 년 전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있다.
바로 우리네 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다.
일제강점기 구룡포의 어업을 점령했던 일본인들의 흔적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곳은 해파랑길 14코스의 출발점이지만, 단순한 통과지점이 아니다.
구룡포의 근대사와 식민지 시절의 어두운 흔적, 그리고 현재 관광지로 재해석된 시간까지 함께 품은 곳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할 생각이지만, 이번 14코스를 걸으며 이 거리의 존재는 분명한 출발의 의미를 남겼다.
(일본인 가옥거리는 별도의 기록으로 남길 예정)


구룡포 해변과 주상절리

일본인 가옥거리를 지나 구룡포 해변 쪽으로 나오면
울창한 소나무 숲과 바다낚시 풍경, 그리고 시원하게 열리는 해안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구룡포 해변은 단순한 백사장이 아니라, 바다와 숲과 항구의 기운이 함께 묻어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자락에서 구룡포 주상절리를 만난다.

절리는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 판상절리와 주상절리로 나뉜다.
기둥처럼 발달한 것은 주상절리, 나무판처럼 펼쳐진 것은 판상절리라고 부른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한 뒤 용암이 식는 속도에 따라 사각형이나 육각형의 다면체 돌기둥 모양으로 발달한 것이다.
 
바닷가에서 이 주상절리를 바라보면, 마치 자연이 오랜 세월 공들여 세운 돌의 성벽을 보는 듯하다.
파도는 그 아래 부서지고, 절리는 아무 말 없이 긴 세월의 비밀을 드러낸다.


석병리, 대한민국 동쪽 땅끝

과거와 현재가 함께 서 있는 작은 항구와 삼정섬을 지나면
‘해를 품은 석병, 대한민국 동쪽땅끝 상징공원’을 만나게 된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섬을 제외한 대한민국 최동단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로 표기하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전설을 품은 구룡포의 끝자락, 바로 그곳이 석병리다.
석병리라는 이름도 아름답다.

긴 해안선 끝의 깎아놓은 듯한 기암절벽이 마치 병풍을 세운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단순히 지리적인 끝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동쪽 끝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바닷바람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사랑 나눔 쉼터와 성혈바위

해안가를 걷다 보면 석병2리의 작은 항구 옆에
**‘사랑 나눔 쉼터’**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에서 길손들을 위해 제공하는 공간으로, 커피와 냉수, 온수를 무료로 마시며 쉬어갈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걷는 사람에게 이런 공간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작은 감동이다.
동해의 바람은 차가워도 사람의 마음은 그보다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 옆에는 성혈바위가 있다.
성혈은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 돌의 표면에 파여 있는 구멍을 말한다.
주로 고인돌 덮개돌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으며, 민속에서는 알구멍, 알바위, 알터, 알미, 알뫼 등으로도 불린다.
주로 원형을 이루며 태양, 여성의 성기, 알, 구멍 등을 상징하는데, 돌 표면을 쪼아 형태를 잡고 회전 마찰로 다듬은 흔적이라 한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고,
생산량의 증대와 풍요, 다산과 번성은 그들의 간절한 기원이었을 것이다.
이 작은 구멍들 앞에 서 있으면, 인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바위에 소망을 새겨 왔다는 사실이 새삼 숙연하게 다가온다.


위험한 길, 그러나 놓칠 수 없던 절벽 풍경

석병리를 지나 강사리로 접어들어 다무포 고래마을에 이르기 전,
해파랑길은 안전한 통행을 위해 약 300m 구간을 도로로 우회하거나,
혹은 해안 절벽 아래 바위 사이를 잇는 교량 구간으로 지나도록 되어 있다.
 
나는 그날, 조금 더 긴장되는 쪽을 택했다.
해안 절벽의 절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험한 구간이었고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절벽 아래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거칠게 밀려드는 바람,
깎아지른 바위벽이 빚어내는 장면은 쉽사리 외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때로 안전한 길만 택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끌리는 장면 앞에서 한 번쯤 더 머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무포 고래마을, 포항의 산토리니

그 다음 만나는 곳은 ‘다무포 하얀마을’, 예전 이름으로는 다무포 고래마을이다.
이곳은 2019년 포항시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역량강화 사업의 일환으로,
호미곶면 강사1리 마을 전체가 하얀 벽과 파란 지붕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푸른 바다와 잘 어울리는 이국적인 풍경을 가진 마을로 재탄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포항의 산토리니라고 부른다.

실제로 마을에 들어서면 하얀 벽과 파란 지붕,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동해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하지만 그 모습은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오래된 어촌마을이 스스로를 다시 그려낸 흔적, 사람들의 삶의 자리 위에 새로운 색을 입힌 결과이기 때문이다.


1일차의 끝, 그리고 남겨진 아픔

1일차 걷기의 마지막은 호미곶 등대 전방 3.7km 지점, 오후 5시 30분경이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이 희생된 흔적이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장소라고 한다.
해안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언제나 밝은 역사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날의 걸음을 멈추며 나는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은 파도와 햇빛뿐 아니라, 사람들의 기쁨과 상처, 그리고 오래 잊히지 않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2일차 기록|2026년 3월 28일

3.7km, 1시간 30분
둘째 날은 서울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서울역 06:43 출발, 포항행 KTX를 타고 내려가, 포항 광역버스 9000번을 이용해
첫날 멈추었던 지점 근처에 도착한 뒤 오전 11시 20분 다시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의 위령탑 근처이자
호미곶 해국 자생지, 그리고 매바위 인근이기도 하다.
짧은 거리였지만 마지막 남은 3.7km에는 호미곶의 상징성과 바다의 표정이 밀도 있게 담겨 있었다.


호미곶, 한반도의 최동단

호미곶은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며,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상징적인 장소다.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하고 측량하여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그날 바닷가는 바람이 몹시 심했다.
점퍼를 벗을 수조차 없을 만큼 바람이 거세어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오히려 그런 날씨 덕분에 호미곶 바다의 본래 얼굴을 제대로 본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해국 자생지와 매바위

트레킹을 이어가며 먼저 눈길이 간 곳은 호미곶 해국 자생지였다.
해국은 잎이 달걀 모양이고, 위에서 보면 잎들이 다닥다닥 모여 퍼지며 잎과 잎 사이 간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잎 주위가 끈적거려 여름철에는 애벌레가 많이 꼬이고, 아침에는 꼿꼿하다가 한낮에는 생기를 잃고, 해가 지면 다시 활기를 되찾는 특성이 있다고도 한다.
관상초로 심기도 하고 식용과 약용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직접 둘러보았지만 아주 특별히 두드러지는 모습은 아니었고, 자생지의 면적도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앞의 해변 매바위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나는 셀카로 내 모습을 남겼다.
긴 길을 걸은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작은 증거 같은 사진이었다.


갈매기와 파도, 그리고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

호미곶 등대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걷는 동안
암벽 사이로 거친 바람을 따라 파도가 넘쳐들었다.
갈매기 떼는 바다 위에서 마치 춤을 추듯 선회했고, 나는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어 셔터를 눌렀다.
 
그 바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깊지 않아 보였지만,
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 바닷물 속으로 무릎까지 잠긴 채 해산물을 수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기보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다와, 삶의 현장으로 바다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 다르다.
나는 그 둘이 같은 풍경 속에 공존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걸었다.


호미곶 인증센터에 도착하다

오후 1시 무렵, 드디어 호미곶 등대 근처 해파랑길 14·15코스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그 주변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멋진 풍경 앞에서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기다려야 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호미곶은 상생의 손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최동단 지역으로,
조선시대 육당 최남선이 호미곶 일출을 조선십경의 하나로 꼽았을 만큼 일출이 장관인 곳이다.

그래서 매년 1월 1일이면 한민족해맞이대축전이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해를 맞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포항의 대표 관광지답게 이곳에는 역사·문화·생태적 가치가 고루 분포되어 있다.
나 역시 말로만 듣던 호미곶을 처음 걷는 길이어서,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고 접근했다.


호미곶의 대표 풍경들

호미곶의 대표적인 풍경으로는
상생의 손, 문어 조형물, 호미곶 경관다리, 해맞이광장, 등대박물관, 유채꽃단지, 계단 모양의 해안단구, 새천년기념관,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일출 명소의 상징성이 있다.
 
나는 이날 해안 트레킹을 목적으로 찾은 만큼
등대박물관이나 새천년기념관까지 찬찬히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이번 걸음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걷는 것이었고, 바다를 따라 몸으로 길을 느끼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백이 좋았다.
왜냐하면 올해 어린이날에는 아내와 손자 둘, 손녀 하나와 함께 다시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오늘 지나쳐 온 전시관과 기념관도 천천히 둘러보고, 가족들과 함께 이곳의 풍경을 다시 마음에 담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자연풍경을 바라보고, 늦은 점심을 해결한 뒤
나는 다시 해파랑길 15코스를 이어 걸었다.
14코스의 끝은 그렇게 15코스의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해파랑길 14코스를 마치며

해파랑길 14코스는 내게 단순한 해안길이 아니었다.

이 길에는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남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과메기의 유래와 어업문화를 품은 구룡포항,
용암이 식으며 만들어낸 구룡포 주상절리,
대한민국 최동단이라는 상징을 지닌 석병리,
길손을 따뜻하게 맞아 주는 사랑 나눔 쉼터,
청동기시대의 기원을 품은 성혈바위,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다무포 하얀마을,
그리고 마침내 거센 바람과 일출의 상징을 안고 있는 호미곶이 모두 들어 있었다.
 
짧은 코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결코 얕지 않았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바람은 거셌으며, 길은 때때로 위험했고, 역사에는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층위가 겹쳐 있었기에 이 길은 더욱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구룡포에서 시작된 오래된 시간은
호미곶에서 거센 바람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끝났다.

아니, 어쩌면 끝난 것이 아니라
가족과 다시 찾게 될 다음 걸음을 위해 마음속에 잠시 접혀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해는 늘 같은 파도로 밀려오지만
그날 내가 본 바다와 바람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사라질 풍경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 남을 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해파랑길 15코스로 이어지는 여정 예고

호미곶의 거센 바람 속에서 해파랑길 14코스의 인증을 마쳤지만,
내 걸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상생의 손이 바다 위로 내민 희망의 손짓을 뒤로하고
늦은 점심으로 몸을 달랜 뒤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이제부터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흥환보건소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15코스,
동해의 바다 절벽과 호미반도의 거친 해안선을 따라 걷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14코스가 구룡포의 역사와 전설, 동쪽 땅끝의 상징성을 품은 길이었다면
15코스는 바다의 본래 얼굴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길이었다.

파도는 더 거칠게 절벽을 두드렸고,
길은 해안선의 굴곡을 따라 더욱 깊숙이 동해의 속살로 스며들었다.
 
호미곶에서 처음 맞은 바람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다시 새로운 풍경 속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길 끝에서 또 어떤 바다와 어떤 마음을 만나게 될지,
그때는 나 역시 알지 못한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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