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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해파랑길 27코스] 바다와 나, 혼자 걷는 15.2km의 사색

1. 글의 시작하며

토요일 이른 새벽,
서울 우면동 집을 나선 시간은 5시 40분.
잠든 도시를 뒤로하고
나는 마음속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청량리역에서 7시 16분 KTX-이음을 타고
죽변역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 58분.
울진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작은 시골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죽변시외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스탬프를 찍고 나의 사색을 담을 여정은
11시 20분, 조용히 시작되었다.

< 동해역, 죽변역 >


2. 여정의 길목들

🌳 후정리 향나무

길의 첫머리엔 후정리의 오래된 향나무.
500년을 바람 맞으며 살아온 그 나무는
두 갈래로 갈라진 채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이 갈라지는 선택과 그 무게를 떠올렸다.

동네 사람들은 이 향나무는 신목(神木)이라 불리는데 울릉도에서 자라던 것이 파도에 떠밀려와 이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 500년 후정리 향나무 >

죽변항과 점심의 기억

죽변항에 다다르니,
과거와 현재가 어깨를 나란히 한 풍경이
잔잔한 바다 위에 아른거렸다.

혼자 걷는 길 위에서의 점심은 쉽지 않았지만,
세 번째 들른 식당에서
물회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랬다.

홀로 걷는 여행길에서 가장 곤란한 것이 식사 문제.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바닷바람과 함께 삼킨 그 한 끼는
지금도 혀끝에 짭조름한 여운을 남긴다.

< 죽변항 주변,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는 항구 >

🚋 죽변해안스카이레일

스카이레일 위로는 시험 운행하는 모노레일들이 길게 늘어서 움직인다.
다음엔 손주들과 함께
그 레일 위를 달려보리라 다짐하며 지나간다.

<죽변해안스카이레일 - 점검 운행중 >

🌊 새뜰마을의 해안길과 등대

조각돌이 깔린 해변, 파도가 속삭이는 물결.
그 길 끝에 서 있는 죽변등대는
시간과 바다를 굽어보며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20년 2월, 자전거로 지나갔던 이 길은
내 기억의 낡은 필름 속 장면처럼 아련했다.

이곳은 ‘등대지구 새뜰마을’이라 불리며
울릉도와 독도로 가장 가까운 육지의 끝.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일렁인다.

< 새뜰마을 주변의 해변과 등대 >

 

🐉 꿈길과 어부의 집

용이 꿈을 꿨다는 ‘용의 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정원 "한뼘 정원"과 우물, 그리고 드라마 속 ‘어부의 집’이 나타난다.
이 길은 이야기가 피어나는 길이자
내 마음에도 작은 전설 하나 새겨지는 길이었다. 용의 마을을 지나면 "한뼘 정원"과 우물이 있다.

드라마는 2004년도 20부작 “폭풍 속으로” 를 말하며, 주인공의 “어부의 집”이 보존되어 관람할 수 있다.

< 죽변 용의 꿈길과 어부의 집, 등대 >

 

🌾 들판을 지나, 마지막 구간

죽변을 벗어나면 시골길.
비상 활주로를 지나
햇살 쏟아지는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해가 중천에 뜬 오후, 그늘 하나 없는 길은
무더운 여름날에 다시 걷기엔 버거운 길이지만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다.

< 죽변 시내를 벗어나 흥부역에 이르는 길, 여름에는 더위에 힘든 길이다. >

 

🚉 흥부역, 그리고 오늘의 끝

그 앞을 지나며 마주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와 준공기념탑.
북면 부구초등학교 앞에서 오늘의 도보는 끝이 났다.
15.2km, 6시간 10분.
혼자 걸었지만 외롭지 않은 여정이었다.


3. 마치며.....

바다는 언제나 말없이 나를 안아주고,
길은 말없이 나를 이끈다.

이번 해파랑길 27코스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 길이자
또다시 나아가게 한 길이었다.

언젠가 이 길을 다시 걸을 날이 오겠지.
그때는
이 바다, 이 등대, 이 향나무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 램블러 기록과 해파랑길 앱의 기록 >
< ChatGPT가 죽변의 "용의 꿈길"에 그려준 황소생각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