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생각의 하루 여정이 시작되는 2025년 4월 26일 토요일,
이른 새벽 5시 40분, 서울 우면동에서 나섰다.
청량리역에서 07시 16분 KTX-이음 열차를 타고,
동해역에서 누리로로 갈아타 울진 기성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23분.
곧장 길을 나섰다. 해파랑길 25코스의 시작이었다.
해파랑길 25코스 공식 거리 23.3km, 소요 시간 8시간 30분이지만,
내 발걸음은 조금 더 길어졌다.
램블러 앱 기준 27.4km, 9시간 10분.
기성역을 떠나 수산교에 이르기까지,
나의 발자국은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시와 그림처럼 이어졌다.
처음 약 4.5km 구간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도로와 산골 마을을 지난다.
봄볕이 무덥게 내려앉아 지루함마저 느껴졌지만,
그 너머 사동항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열리고 사진 촬영준비를 한다.
정박한 레저용 선박들, 아득한 파도, 흰 백사장, 여기저기 기암괴석들…....
해변의 고요함이 위안이 되었다.
망양해수욕장 옆 송림에서는 준비해 간 빵과 음료로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해변과 솔숲 사이를 걷는 길은 고요하면서도 싱그럽고,
바람은 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남아있는 고택과 현대화된 주택은 역사의 흐름을 느끼게 하고
망양정 옛터는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기며 역사를 품었고,
그 기운은 관동팔경의 숨결로 이어진다.
산불의 흔적으로 나무들이 사라진 산자락은 안타까웠지만,
바다와 마을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물을 다듬고, 미역을 채취하고 말리는 모습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어촌의 시간은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황금대게공원, 망양휴게소, 오산항을 지나며 걷는 길.
오징어와 대게 모형,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기암들, 양 떼 모형이 있는 펜션, 바다낚시꾼들…
그 모두가 풍경이자 시였다.
물개바위, 촛대바위,
그리고 정자가 놓인 기암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해가 기울 무렵, 망양정에 도착했다.
왕피천이 동해와 만나는 언덕 위,
“관동제일루”라 불리는 이곳은 정철의 ‘관동별곡’이 새겨진 바로 그곳이다.
시간이 늦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불빛과 조화를 이루니
이곳의 기운은 마음을 맑게 했다.
황소생각은 손주들과 다시 찾기로 다짐하며,
성류굴과 왕피천생태공원, 케이블카가 기다리는 내일의 여정을 기약했다.
밤 8시 10분, 수산교 앞에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걸음의 끝에 남는 건 피로가 아니라 고요한 충만이다.
황소생각이 2020. 2. 자전거로 스쳐 지나던 이 길을, 오늘은 발로 새겼다.
걷는 이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그 속에 삶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해파랑길 25코스, 그 아름다움은 고요히 내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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