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7일 아침 8시,
울진 수산교 앞에서 시작된 나의 걷기는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어젖히며 출발했다.
전날 기성역에 내려 해파랑길 25코스를 완주하고,
왕피천이 흐르는 수산교 앞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의 길.
이 길은 낯설지 않았다.
5년 전, 2020년 2월.
황소생각이 자전거로 동해안을 따라 이 길을 달렸고,
바다 내음과 바람의 감촉은 그때 그대로였다.
왕피천을 건너면 펼쳐지는 광활한 울진엑스포공원. 또 다른 이름은 울진왕피천공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그 지점엔
200년 넘은 소나무 1,000그루가 자생하는 숲이 있다.
생태공원과 체험관, 곤충여행관, 다도체험장, 아쿠아리움이 들어선 이 땅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바다 건너는 케이블카는
관동팔경 중 첫 번째인 망양정으로 이어지며,
시공간을 넘는 경관을 품는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해변의 송림과 캠핑카가 머무는 염전해변을 지난다.
이어서 남대천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엔
물고기 은어 모양의 유려한 곡선형 다리가 놓여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남대천변을 따라 걷다 보면
연꽃으로 이름난 연호공원과 월연정을 만나게 된다.
비록 지금은 연꽃이 피지 않았지만,
고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팔각정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준다.
연호공원을 지나 도로와 마을길 1km를 따라가면
다시 바다가 열린다.이곳부터는 본격적인 해변길.
해변길 약 7.5km를 따라 걷는 동안,
모래밭에 뿌리내린 해당화와 소나무는 바다의 친구처럼 길을 함께 걷는다.
그 길 위에 봉평 해변이 있다.
기암과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에 가슴이 트이고,
동시에 쓰라린 기억이 떠오른다.
화재로 잿더미가 된 소나무 군락지.
그 자리에 남은 검은 흔적은 자연의 아픔이자 인간의 상처다.
마을을 지나며 보게 된 초가집과 현대식 주택은
마치 시간의 이음매 같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들.....
바닷가에서는 미역을 다듬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길
주렁주렁 매달린 미역 줄기, 짭조름한 갯내음
12시 55분, 죽변항구 근처 해파랑길 26코스의 스탬프함에 도착했고,
해변가 식당에서 점심식사을 하고 2km를 더 걸었다.
봉평리의 신라비 전시관을 둘러본 뒤,
오후 3시 10분. 죽변역에서 오늘의 길을 마무리했다.
이날 나는 19.0km를 7시간 10분에 걸쳐 걸었고,
그 길 위엔 오래된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가 함께 있었다.
걷는다는 건 기억을 꺼내고, 삶을 다시 쓰는 일이다.
황소생각의 해파랑길 26코스 트레킹 일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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