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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서

작년 11월 청산도 일정을 단축하고 보길도에서 1박 하였으나 이제야 정리하여 2번째 포스팅 한다.

보길도라면 고산 윤선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윤선도-尹善道,1587~1671, 본관은 해남(海南), 호는 고산(孤山)- 는 조선 중기의 문신·시인으로서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복서·음양·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고산 윤선도는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회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의 황원포에 상륙하여 은거하였다.  보길도에서 13년이나 은거했던 고산 윤선도는 이곳의 자연과 친구가 됐다.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 달을 일컬어 다섯 친구라 부르며 자연과 함께 생활했다. 그의 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 그대로 남아있는 보길도의 자연은 수백 년 세월이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 남아있다.


(세연정 가는 길목에 세워진 어부사시사중 와  )


(노화도에서 장사도를 건너면 보길도 이다.
위 지도에서 ①②③ 가운데 길에
윤선도의 자취가 남아있다)

보길도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그 중 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은 섬의 가운데를 가로지르게 되어있다. 
차로 5분쯤 달리자 처음 나타나는 곳은 세연정①. 고산이 정자를 짓고 인공연못을 만들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여기서 산으로 15분가량 올라가면 옥소대가 나온다. 옥소대에서 무희가 춤을 추면 세연정에 그림자가 비춘다고 한다.

(세연정의 모습 - 절로 풍류가 나올법한 경치에 발걸음이 멈춘다.)

세연정에서 부용동으로 더 들어가면 우측 산 가운데 ‘동천석실’② 이 보인다.
길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에 놓인 정자가 보이는데 역시 고산이 차를 마시며 보길도의 풍광을 즐기던 곳으로 고산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동천석실에서 건너편 산자락 밑을  바라보면 곡수당과 낙석재③가 내려다 보인다.

(산중턱 암반 위의 동천석실, 놀랄 따름이다) 

동천석실에서 땀을 식히며 건너편 산자락 아래를 내려보면 곡수당낙석재가 내려다 보인다.
곡수당은 고산의 아들 학관이 작은 초당을 지어 휴식할 만한  곳을 마련하고자 청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또한 "독서를 즐기는 집" 이라는 뜻의 낙석재는 윤선도가 기거했던 곳으로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곡수당 - 복원이 상당히 진척되었다)

(윤선도가 기거하던 곳으로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윤선도의 발견 ☞ 윤선도 유적에는 반드시 연못 = 물 이 발견된다.  

다음편에서는 세연정과 어부사시사를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세연정의 아름다움을 낱낱이 살펴보려면 많은 사진이 필요하다.

(끝)

황소생각의 하늘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