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옹기의 숨결따라, 외고산 옹기마을 5월초부터 언양에 머물며 영남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처음에는 주변을 살필틈 없어 밤낮, 주말없이 다녔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주변을 살피게 되었고 바쁘더라도 잠시 차를 멈추고 둘러보는 여유를 갖도록 노력했다. 그중의 하나가 "외고산 옹기마을" 이다. 언양에서 지방 산간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타며 온양을 거쳐 온산 석유화학공단으로 오가면서도 발견하지 못했으나, 지난 8월 11일 온산에서 온양으로 나오는 길목 신호대기중에 특이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차를 멈추고 둘러보기로 작정했다. (신호대기중에 발견한 옹기마을 안내 조형물)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에 위치한 옹기마을은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며, 생활이 어려운 마을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부산에 많.. 더보기
지리산 둘레길 4코스(금계-동강) 여정 5월 5일 어린이 날, 친구 넷이 지리산 둘레길 탐방에 나섰다. 제주도에 올렛길이 소개된 이후 전국 각지에 유사한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고 있으며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잇는 300여 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2011년까지 옛길, 고갯길, 숲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還)형으로 길을 완성할 예정이다. 제주도의 올렛길이 바다를 끼고 해안가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면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조성되는 특징이 있다. 둘레길이라 이름하게된 배경은 지리산 둘레 80여개 마을을 이은 800리 길로서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 같다. 공식 명칭은 "지리산.. 더보기
옛날의 향기를 찾아 간, 순천 낙안읍성 (2010 남도여행 포스트 10, 최종) 옛것은 아름답다. 순천 낙안읍성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흔적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옛것에는 향기가 배어있다. 숨결이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있다. 세월의 풍파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옛것에는 정감이 있다. 이번 남도여행 마지막 코스로 옛것의 아름다움을 찾아 순천 "낙안읍성"을 다녀왔다. 지난 법정스님 다비식때 순천시내를 지나치며 낙안읍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후에 검색해 본 후, 기회보아 가보려던 참에 이번 남도여정에 포함하여 다녀오게 되었다.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 더보기
다시찾은 쌍계사 (2010 남도여행 9) 내가 처음 쌍계사를 찾은 것은 1989년경으로 기억된다. 실로 긴 세월이다. 아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한 시기가 88년 인천에 근무할 때이고, 그후 한적한 곳에서 간혹 아내에게 운전을 해보도록 했는데 쌍계사 주차장에서 펑크낸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쌍계사 앞은 상가도 별로 없었고 무척 한산했다. 텅빈 넓은 주차장에서 운전하다가 보도턱을 들이받아 차가 주저않고 말았다. 예비 타이어로 갈아끼우고 나오던 길 어디선가 펑크 때우고 차량점검을 받았지만 서울로 돌아와 타이어를 보니 편마모가 심한 것이 발견되어 정비소에서 확인하니 휠이 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새삼, 아내가 운전을 숙달하는데는 이외에도 남의 차 문짝 두번을 수리해 주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비싼 댓가를 치렀다. 그러나 .. 더보기
화개 "벚꽃십리길"에서..., - 함께하기에 아름다운 것들 - (2010 남도여행 8) 함께하기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무리가 있다. 세상에는 홀로하기에 아름다운 것이 있고, 함께하기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함께하기에 아름다운 것을 우리가 "군락(群落)"이라 이름지어 부르는 곳 들이다. 벚꽃은 봄 소식을 전해주는 대표적인 꽃나무로서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벚꽃놀이"라는 이름으로 무리지은 아름다움을 찾아 먼 길 마다않고 찾아 나선다. 구례 "산수유마을"을 찾는 것, 내장산 "단풍", 보성 "녹차밭"을 찾는 것도 "군락"의 아름다움 때문일게다. 화개의 "벚꽃십리길"을 포함하여 내가 찾았던 곳 들을 기억해 보면 "진해 군항제", 전남 보성 "대원사 길", 서울 여의도 "윤중로 길", 서울 남산 "산책로 길" 외에도 전국에 많이 산재해 있다. 옛날 어린시절에.. 더보기
섬진강 물길따라 50리, "토지"의 무대 평사리를 찾아서... (2010 남도여행 7)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는 하동과 화개장터 50리 길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섬진강가에 조성된 "평사리 공원"에서 약 2km 정도 들어가 있다. 다리 통증 때문에 높이 올라가야 하는 코스는 모두 포기했으나 이곳 평사리의 "토지" 무대중 "최참판댁"과 드라마 촬영장소였던 부락은 둘러보기로 했다. 그외 "조씨고택"과 "취간림"도 포기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최참판댁"이 화개장터에 가까운 곳으로 표시되었으나 사실은 섬진강대교와 화개장터 거의 중간지점이다. 이와 같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 안내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동 관광안내 지도 "토지"는 5부 21권으로 구성되었다. 소설을 읽지 못했고 드라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우리나라 문.. 더보기
섬진강 물길따라 50리, 화개장터 까지 (2010 남도여행 6) 앞서 언급했듯이 어제 늦은 오후, 버스편으로 하동에 도착하고 부터 다리의 근육통이 더욱 심해 걷기가 부자연스럽다. 휴대폰 충전이 필요해 편의점에 충전을 의뢰하며 배낭도 부탁했다. 배낭의 무게마저 벅차다. 그리고 자전거 점포를 찾았다. 도보여행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빌려 볼 요량 이었다. 읍내에서 두 군데 찾았으나 모두 대여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고 섬진강변 도로 폭이 좁아 위험하여 대여를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일단 병원부터 찾았으나 토요일 오후라 모두 문을 닫았다. 고민끝에 승용차 렌탈을 하려고 하동시내 렌트 회사에 문의하니 주말이라 모두 나갔다는 설명이다. 다시 구례쪽 렌트회사에 확인하니 그쪽 사정도 마찬가지 이다. 심지어 순천쪽도 마찬가지 이다. 승용.. 더보기
산수유 마을의 봄과 섬진강 탐색 (2010 남도여행 포스트 5) "위아래 찬찬이 보세요. 위에는 점차 색이 흐려지고 아래는 점차 선명해 지거든요." 산수유 마을 입구에서 만난 소년의 말이다.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어서 "산수유 축제 때가 꽃색깔이 가장 예뻐요. 이제 축제기간이 지났고 색이 점차 옅어져요. 그러나 개나리가 예쁘게 피고 있어요." 아하!, 소년은 마을 입구 오르막 길가 산수유 아래 노랗게 핀 개나리 꽃과 산수유의 어우러짐을 함께 느끼라는 이야기 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 온 시골 소년의 맑고 고운 마음이다. 자연을 읽을 줄 안다. 도시 소년들에게서 읽을 수 없는 마음이다. 아니, 도시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향기이다. 내가 여행하며 현지인과 자주 대화를 하려는 이유가 도시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보기
선암사와 600년 선암매(仙巖梅) (2010 남도여행 포스트 4) 약 5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조계산을 넘었지만 선암사에 당도 했을 때는 다소 지친 상태다. 하여, 보다 꼼꼼이 살펴보지 못했고, 차밭과 다원등을 들러 차 한잔 하지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결론부터 시작하자면 처음으로 선암사를 찾은 나에게, 다른 사찰과는 특이한 점이 몇가지 눈에 띈다. 첫째, 사찰 건축물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래된 고택(古宅)의 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말미에 선암사의 유래를 덧붙이겠지만 유독 수차례의 대형화재를 겪은 탓인지 전각들 대부분이 전면 증축되거나 개축되지 않고 보수가 필요한 부분들만 조금씩 손보아지며 가꾸어진 덕택에 다른 절들과는 확연히 다른 격조와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 건축물의 처마, 기둥과 보에 채색되지 않았고 외벽도.. 더보기
송광사에서 선암사 가는 길, 조계산 자락 (2010 남도여행 포스트 3) 먼저, 曹溪山 이름의 내역을 살펴본다. 조계산이란 이름은 송광사와 선암사에 의해 태어났다. "송광사지"에 의하면 고려 희종 4년(1209)에 어릴 적부터 존경하던 보조국사가 옛 길상사 터(지금의 송광사)에 수선사를 세우고 승풍쇄신 운동인 정혜결사를 펼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기뻐하여 "조계산 수선사"라는 편액을 내리고 널리 찬양하였으므로 이때부터 조계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한편 1921년에 세운 "선암사 사적비"에는 고려 고종때 대각국사가 중창하고 산의 이름을 조계산으로 바꾸고.... 라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문헌으로 보아 조계산이 되기 이전에는 선암사측 주봉인 장군봉은 청량산, 송광사측의 효령봉(연산봉)은 송광산이란 각각의 이름으로 불린 것이 사실이며 두 사찰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