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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맛집 이야기

보길도 여정(旅程)

지난 해 11월, 청산도 여행 3박 일정을 변경하여 1박을 보길도에서 보냈다.
당초 예정에 없었으나 10여년전 홀로 해남 땅끝까지 둘러보며 보길도를 다녀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다시 먼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아 일정을 변경했다. 덤으로 나오는 길에 아내에게 해남 땅끝마을 까지 둘러보게 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인지라 청산도 일정을 변경하였다.

1박 2일 여정 이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려니 몇 차례 나누어 포스트 해야겠다.
보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이고, 윤선도하면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빼놓을 수 없다. 하여 다음 편에  "윤선도의 자취를 따라서"와 "세연정과 어부사시사"를 중심으로 포스팅 하고  오늘은 보길도의 자연을 소개해 볼까 한다.

먼저, 섬의 유래를 보면 ‘보길도’라는 표기는 「동국여지승람」(1481년)에 등장하고 있어 그 구전 명칭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음이 틀림없다. 또다른 학설은 ‘뵈골두~배골두’라 부르는 학설 이다. 바구리의 옛말 ‘보고리’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도상의 보길도는 백도 쪽을 제외하면 바구니 모양이다.  인근 도서민들이 바구리 섬이라고 부르곤 했다.

다른 학설은 ‘보고래’로 부르는 학설 로‘보+가래’로 분석될 것으로 보인다. ‘보’는 나무와 관련된 형태소로 짐작되며, ‘삽’을 뜻하는 고어로 보인다. 나무로 만든 보습의 방언형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습이란 쟁기를 뜻한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 영암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묘 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 甫吉)’라는 글을 남겼다 한다. 부자는 월출산에 있는 한 스님에게 내용을 물으니 섬 내에 명당자리가 11군데가 있는데 10군데는 이미 사용되었고 나머지 1군데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풀어 이 섬을 보길도라 불렀다고도 한다.
행정구역은 본래 노화면에 속해 있다가 1986년 4월 1일 보길면으로 분리승격 되었다.

(여행중 휴대했던 안내지도중 일부이다.)


청산도에서 점심을 먹고 완도항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화흥포"항으로 이동했다. 날씨는 배에 오른 뒤 부터 가는 비가 내렸다.
연안 도서로 가는 뱃편이 각 항구에서 출발하니 매우 불편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항구에 도착하니 곧 보길도로 가는 배편이 출발 직전이다. 배의 선체에는 농협 마크가 선명하다. 이상하다 싶어 주민에게 물으니 많은 노선이 적자인지라 농협이 정책적으로 운항한다고 한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둘러 티켓팅하고 배에 올랐다. 위 사진의 배가 노화도 동천항으로 가는 배편이다. 역시 바로 보길도를 가는 것이 아니라 노화도 동천항에서 버스로 다시 보길도로 이동해야 한다.  노화도와 보길도는 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동천항으로 가는 길목에 바위가 매우 특이하여 사진을 찍었다. 곧 동천항에 다다를 무렵 구름이 걷친 사이로 햇살이 비춘다.


세연정 가는 길목 이다.
도로변에는 여행객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사진처럼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바로 산 아래가 "황원포"로 윤선도가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상륙하게된 포구 입니다. 지금은 아무런 흔적을 볼 수는 없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숙인 김해 김씨 열녀비"가 있다. 그 옆으로는 올 겨울 김장용 배추가 넓게 재배되고 있는 모습이다. 풍성하고 파릇파릇 하다.


위 사진은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면사무소와 청별항이 있는 곳이다. 머무를 숙소와 식당,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다.
가는 비는 계속 내리고 있어 먼저 숙소를 정하고 짐을 맡기고 남은 시간은 ① 세연정과 ③ 곡수당을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② 동천석실은 시간상 포기했다. 거리는 숙소에서 세연정까지 약 1.5Km, 다시 부용리 곡수당까지 약 1.5Km 정도인지라 시간상 충분했다. 다행히 비가 멈추어 걷는데 무리가 없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세연정의 아름다움에 취해 곡수당에 도착하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오는 길은 이동하는 차량도 만날 수 없어 밤길을 아내와 걸어 나왔다. 숙소 인근에 도착하니 바다 건너 노화도의 이목항구 야경이 아름답다.

피로도 풀겸 돼지갈비에 소주 한 잔 하기로 하고 사진의 화로갈비 집에서 신을 벗었다. 사실 저 집이 세 번째 들른 집이다. 숙소에 딸린 식당에는 삼겹살이 없다고 하고, 앞집 삼겹살 집에서는 3인 이상의 손님을 받겠다고 한다. 고약한 동네라 생각하며 들른 집이지만 의외로 고기 맛이 좋았고 음식도 깔끔하다. 또 젊은 사람들이 친절하여 내일 식사도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해변으로 나와 둘러보니 비구름이 물러가기 시작한다. 숙소의 1층 식당에서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여행보따리는 오후에 찾아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하며 지도를 펼치고 오늘의 코스를 결정했다.위 지도의 우측 ⑥ 통리해수욕장 -> ⑦ 예송리 해수욕장 -> 수리봉 -> ⑫ 격자봉을 넘어 -> ⑪⑩ 보죽산 -> ⑨ 지도 좌측 해안을 따라 보길면으로 돌아오는 길로 결정했다.


밤에도 비가 내린 모양이다. 이른 아침 걷는 발길 따라 길가의 나뭇가지와 열매가 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통리 해변에는 양식장에 쓰일 다시마를 잔뜩 실은 작은 배가 접안하고 있다. 바다는 잔잔하다. 호수에 떠 있는 것 같다.


통리 해수욕장이다. 잔잔한 해변이 1Km는 족히 될 듯 싶다. 아내가 고운 해변가에 서 있다.


모래가 무척 곱다. 아내가 발자욱을 남기려 깡총깡총 뛰어 보았다.


통리 해수욕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발걸음을 예송마을로 옮겼다. 가는 길목에는 도로변을 정비하는 아주머님 무리가 열심히 작업중이다. 다다르니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탕을 나누어 드시다가 우리에게도 건네준다. 감사히 받으며 인사 나누었다.
언덕을 넘어 예송리 해안이 넓게 내려다 보인다. 내려가는 길목 전망대에는 노인 두 분이 정담을 나누시다가 먼저 쉬어가라 말씀 하신다. 아침에 숙소를 떠나 처음으로 정자에 앉자 물 한 모금하며 쉬었다. 노인들께서는 좀더 쉬며 서울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하시지만 갈 길이 멀어 용서를 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수리봉과 격자봉이다. 보길도에서 가장 높다. 오늘 여정이 저 곳을 넘어야 한다. 예송리에서 산 넘어 보옥리로 가려면 해안을 따라 갈 수가 없다. 해안은 절벽으로 이루어졌다. 뱃길이 아니면 오로지 격자봉을 넘어야 한다.


정자를 떠나 예송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천연기념물 제40호 "예송리상록수림"이 해안가를 따라 펼쳐져 있다. 약 300년전 조성된 숲으로 길이가 약 740m, 폭이 약 30m에 이른다. 강한 바닷바람으로 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지켜주며 물고기 때를 유인하는 "어부림"의 구실도 하는 매우 소중한 유산이다. 선조의 지혜와 문화적, 생물학적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해안가에 다다라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해변가 해수욕장 화장실은 문을 열고 들어 설 수 가 없다. 악취와 오물로 가득하여 들어 설 수가 없다. 실례를 무릎쓰고 한 켠에 볼 일을  보아야 했다. 아름다운 해변과 너무 대조적인 모습에 실망했다. 그러나 해변은 흑자갈로 이루어져 상록수림과 함께 톡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밀려오는 파도에 흑자갈이 소리를 낸다.


한켠 예송리 포구에는 작은 선박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푸른 이끼낀 방파제와  낡은 목선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바다에서 보는 낡은 목선은 옛  정취를 자아낸다.


여기까지는 평탄한 길에 아름다운 경치 벗삼아 걸었다. 9시에 길을 떠나 이곳 마을 유일의 구멍가계 앞에 다다른 시간이 11시 52 분이다. 점심을 먹자니 시간도 이르거니와 식당도 없다. 여름 한 철 임시 식당이 개설된다고 한다. 빵도 구할 수 없다. 구멍가계에서 아이스크림으로 갈증을 풀었다. 그리고 산중에서 먹을 쵸코파이 한 상자와 초코렛, 식수 등을 구입해 배낭을 채웠다. 그리고 출발 하기전 커피를 부탁했다. 여느 시골 할머님과 달리 매우 고운 가계 주인은 물을 커피포트에  데워 봉지커피를 내어주시고 계산을 치르고 보니 봉지커피 한 잔에 1,000원 씩 계산한다. 청산도길 구멍가계 아주머님 생각이 난다. 캔맥주 하나 캔커피 하나 마시고 추가로 마신 더운 커피 두 잔 값은 안 받는다고 하신 아주머님과 대조를 이룬다.

산길로 접어 들기전 주민에게 길을 확인하니 위험하다고 말리신다. 분명히 길목 여기저기에는 보옥리 <->  예송리 탐방로 6Km가 조성되어 있다고 안내되어 있는 것 과는 상반된다. 다시 다른 분에게 여쭈니 입구를 안내해 주어 마을 끝 자그마한 교회 앞에 다다르니 이정표는  안보이고 산길이 보인다. 그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니 길이 막힌다.  아차! 길을 잘못 들어섰다. 1시간은 족히 헤맸다. 산 길을 헤메다 보니 아내가 피곤을 호소한다.  할 수 없이 길을 변경해야 했다.


코스를 변경하여 예송리에서 부용리 곡수당으로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이 아니면 아침에 오던 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작은 산 능선만 넘으면 부용리(⑦ -> ③) 이고 어제 어두워져 자세히 살피지 못한 "곡수당"과 포기했던 "동천석실"을 살피기로 했다. 활엽수로 이루어진 숲길은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가파른 곳은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돌계단 보다는 훨씬 걷기 편했다.


8부 능선에 올라 배낭을 풀고 준비한 것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리고 부용리 하산 길로 접어드니 길가 그늘진 길목에는 아름다운 잡초가 무성하다. 내려 오는 길에 아내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예송리와 부용리 마을 모습이다.


8부 능선은 동백꽃으로 숲을 이루었는데 떨어진 꽃봉오리를 주워 모자에 얹어보았다. 영화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6.25를  배경으로 북괴군과 우리 군이 전쟁중 마을에서 벌어지던 내용중 여배우가 머리에 꽃을 꽂은 모양을 흉내 내었다. 산을 내려와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을 둘러보고 보길면으로 나가는 길목 도로변에는 동백꽃 길인데 길목에 앉아 꽃잎을 즐겼다.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가 되었다. 이제 아내가 힘들어 하여 혼자 보길대교를 다녀왔다. 다리 중간 장재도에는 정자와 잘 정돈된 정원으로 꾸며졌다.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몰려든다. 어제 저녁을 맛있게 먹은 "보길도 화로갈비집"에서 시원한 냉면으로 해소했다. 이제 보길도 여정을 마무리 할 시간이 되었다. 해남에서  활동하시는 회원님께서  땅끝마을에 마중 나오시기로 했다. 어차피 서울로 돌아오는 가장 편한 방법이 해남 땅끝마을을 지나는 길이다. 육지로 나가는 뱃편이 가장 많고 서울로 바로가는 차편도 편리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