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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생각

법정스님의 다비식 하루 전날 송광사 모습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존경하는 분은 누구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이셨던 한현수 선생님과 김수환 추기경님, 그리고 법정스님 세 분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담임 선생님 외에 두 분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합니다.  두 분을 기억하는 것 만으로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분노와 흥분을 진정하게 해 줍니다. 그 분들을 흉내내는 것 만으로도 삶의 가치를 느낌니다.

법정스님 법어집에 출가수행자에게 당부하신 말씀 입니다. "수행자는 세 가지를 갖추어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주는 스승, 함께  수행하는 벗, 수행하는 장소를 말 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살아 가는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스승과 생활환경과 친구를 잘만나야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렇듯 스님 말씀 하나하나가 생명 입니다.

나는 어려서 전기전집을 많이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이 가난하여 동화책이나 위와 같은 책이 별로 없어 친구집을 드나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집 2층에 가득 쌓인 책을 빌려다 보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던 기억입니다 . 세월이 많이 흘러 필동에서 그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당시 동네주변과 그 친구 집이 눈에 선 합니다.

10대 후반부에는 문학서적을 중심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만과 편견", "독일인의 사랑".....,  이상의 "날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

나이가 들어 징병검사를 받을 무렵 어느 분의 추천으로 '노만 V. 피일' 박사의 "적극적 사고 방식"을 읽은 후 내 생활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누렇게 변색된 그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 자기개발서, 교양도서, 에세이 등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때 만난 책들이 성철스님, 법정스님,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야기 입니다.

인생은  역사의 흐름 입니다.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나와 같이 50년대에 탄생한 분들은 격변기의 세상을 살아 온 것 같습니다. 격변기의 그늘진 곳, 정의롭지 못한 곳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목소리는 희망의 메세지 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둥 이었기에 존경합니다.  법정스님은 나와 종교도 같지 않습니다. 스님과는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 많은 책을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지금 가진 법정스님의 말씀은 세 권 뿐 입니다. 그 분은 승려 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색채를 거의 느끼지 못하겠고 오히려 불교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스님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자신을 돌아 보게하는 거울이요, 내 마음의 안식처요, 지혜를 주는 스승과 같습니다.  특히, 두 분은 종교간의 벽을 넘어 이웃 사랑을 실천하신 큰 분들 입니다.

작년에 "일기일회"를 읽으며 스님 생전에 법어를 꼭 들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병세가 호전되기를 기대했으나 며칠전 입원소식을 듣고 우려 했습니다만 결국 입적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12일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잠에서 깨어나 조간신문에서 법정스님의 기사를 읽으며 다비식에 참석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배낭을 꾸려 11시발 여수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길상사에서 12시경 법구가 출발한다는 소식이니 그 전에 송광사에 도착하여 법정스님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먼 여행 떠나시는 법정스님을 배웅하여야 겠다고 맘 먹었습니다.

이후는 송광사 도착후의 상황을 사진을 곁들여 기록합니다.


순천역에서 송광사까지 시내버스 111번이 운행됩니다.
배차 간격이 30분 정도인것 같습니다. 역전앞에서  점심을 먹고 30분을 기다렸습니다.
약 1시간 30분만에 입구 상업지역 종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가 3시 30분경, 이미 10여대의 버스가 들어와 있습니다.
뒤따라 들어오는 버스도 있습니다.
4Km 정도 거리의 절 입구부터 경찰들이 배치되기 시작 합니다.

버스 앞에 보이는 상가에서는 흥겨운 노래가락 소리가 들립니다.
"마음 약해서~ 마음 약해서~, 나는 너를 잡지 못했네~"
세상 돌아가는 소리 입니다.

흐르는 물소리 입니다.
노래 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상업지역을 지나 절로 향하는 길목. 매표소 옆 입니다.
오늘은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절로 향하는 조문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계곡 좌측은 통행인 도로, 우측은 차량전용 도로 입니다. 모두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천 계곡은 전형적인 겨울 모습 입니다. 삭막합니다.
내 마음이 삭막해진것 일까요?


송광사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주차 가능한 곳에는 이미 승용차가 즐비합니다.
호수 주변에 애기단풍 나무 입니다. 나뭇가지 새싹이 이른듯 합니다.
호수가에는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취재차량 등도 분주히 오갑니다.


송광사 안내도 입니다.
상당히 규모가 커 보입니다. 고찰의 냄새가 물씬 풍겨납니다.
안내도에서 불일암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안내도 좌측 상단 모서리에 불일암이 위치 합니다.
경내에서 멀리 벗어난 조계산 자락 입니다.
오늘, 내일 중으로 찾아 볼 생각입니다.


조계문(일주문)밖 고승들의 추모비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이마저도 남기지 마라 말씀하셨습니다.


조계문 안쪽에서 바라 봅니다.
일주문 이라고도 합니다.
지붕만 살짝 보이는 곳은 불일서점 입니다.

조계문 밖에는 수녀님의 모습과 카메라를 설치한 기자들이 웅성 입니다.
법정스님을 모신 차량이 이곳에서 멈추게 됩니다.

기자들이 통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곡성 통과", "약 20분후 도착예정" 통화가 간결 합니다.
촬영준비에 분주해 집니다.

조계문 안쪽은 세월의 깊음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빛나랜 처마 밑을 한참 올려다 보았습니다.
법정 스님도 옛적에 이 문을 드나드셨을 것 같습니다.
색이 바래기 전부터 넘나드셨을 것 같습니다.
스님 연세를 말하는 듯 합니다.


저기 보이는 폭좁은 다리 위로  법정스님의 법구를 상좌스님들이 운반해야 합니다.
폭이 너무 좁다고 지적하시며 진입로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님도 계십니다.
그러나 물이 고여있는 누각 앞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운치도 느껴집니다.
다리 위에서 반대편 조계산 정상쪽을 바라보면 더욱 아름답습니다.


법정스님이 하루 밤 머무실 운수전에 이르는 길가 양옆에는 신도들이 줄지어 기다립니다.
손에는 저마다 향을 들고 기도합니다. 향 냄새가 진동 합니다.


송광사 대웅전과 멀리 법정스님의 분향소가 보입니다.
운수전 앞과는 대조적으로 적막합니다.

서울 날씨부터 이곳에 도착했을 때까지 줄곧 흐린 날씨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4시가 넘어서 부터 바람이 세차집니다만 하늘은 맑아집니다.

4시 55분경 도착예정을 알려 옵니다.
동시에 "나무아비타불"이 아니고 "석가모니타불"이라고 전달됩니다.
일찍부터 향에 불을 피운 탓에 모두 새 향을 준비합니다.

고승도 가누기 힘든 몸을 움직이며 법정스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5시경 부터 다시 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바람은 세차 다소 추워집니다.

드디어 불일서점 나무사이로 선도차가 나타납니다. 뒤이어 운구차의 모습도 보입니다.
기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 집니다.


멀리서 부터 목탁 소리가 들려 옵니다.
잠시후 원로스님을 선두로 제자들에 의해 법정스님의 법구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걱정했던 좁은 다리도 무사히 통과한듯 합니다.
신자들의 염불소리가 점점 더 커집니다.
"석가모니타불~"
"석가모니타불~"
바람결에 향내도 멀리 멀리 퍼져 나갑니다.


"비구법정", 그 뒤로 영정, 대나무 평상 위에 스님이 걸치던 가사를 덮은 스님의 법구가
점점 다가 옵니다.  서서히 다가 옵니다.
설마!  놀랍습니다.  놀랍습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스님 관도 없어. 평상 위에 적삼으로 덥었을 뿐이야"
답장 "대단하시다"


내가 왜 왔지?
스님 맞이하고 배웅하려 온 것인가?
사진 찍으러 온 것인가?
잠시 목적을 잊었습니다.

법구가 내 앞을 통과할 무렵 카메라를 내려놓고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성호를 긋고 두 손 모았습니다.
그러나 머릿 속이 하얗습니다.
어떤 기도문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니 멀리 운수전으로 들어가시기 전 입니다.
법정스님을 따르는 행렬입니다.
원불교, 천태종 등 불교종단이 다 모인듯 합니다.
법정스님은 조계종 입니다.


운수전 뒤로 돌아와 담장 너머로 살핍니다.
법정스님을 모시고 잠시 간단한 기도의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옆 건물 굴뚝에서는 연기가 흩어집니다.
그옆 담장 밖 산수유가 꽃봉우리를 트려 합니다.
그리고 건너편 산줄기 넘어 내일 다비식이 거행될 장소 입니다.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라시는 스님의 말씀처럼
연기는 흩날리고
산 위의 구름은 바람따라 흐릅니다.
산수유는 계절을 놓칠 수 없겠지요.

인간의 삶과 죽음.
산수유의 피고 짐과 무엇이 다를까요?

모두 자연의 일부 입니다.
흩날리는 연기와 같습니다.

민박집에 머물며 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인생은 흩날리는 연기와 같습니다.


운수전 안에는 신부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잠시후 스님에 안내를 받아 법정스님을 뵙고 나오십니다.


운수전 앞에는 외국인 승려의 모습도 보입니다.


나는 아직 법정스님께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법정스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분향소에 다가서자
마침, 신부님께서
KBS 취재에 응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을 뵙게 되어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말씀인가 들어 봅니다.
기자가 오시게 된 동기를 질문한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법정스님은 종교간, 종파간, 이념갈등, 계층간의 벽을 넘어 가르침을 주신 분 입니다.
그 가르침이 실현될 수 있도록 소망하는 뜻에서 조문을 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길상사를 방문하신 일과 법정스님의 명동성당을 방문하신 의미에
대해서도 말씀 하셨습니다.

"그릇에 무엇을 담는 가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취재가 끝나기를 기다린 후 신부님께 인사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고 함께 법정스님 분향소에 조문을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스님들의 안내를 받아 어디론가 들어가시고
나는 숙소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뉴스를 지켜보니 인사드린 신부님은
광주 대교구 부교구장 신부님 입니다.


조계문 앞 불일서점 옆에는 길상사에서 부터 법정스님을 모신 차량을 인도한
선도차량이 있습니다
.


나의 숙소 민박집이 있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안내판의 위치로 보아 불일암에 오르는 길목인 것 같습니다.
이제 어두어지기 전이라 불일암은 내일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다비식이 내일 11시 예정이니 그 전 또는 그 후 다녀보기로 하고
발걸음 숙소로 향했습니다.

스님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황소생각의 하늘사랑